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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에 대한 노골적 멸시도 이제는 더 이상 패륜이 아니고 그저 일상일 뿐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신조어들을 듣게 되면 아연실색하여 어찌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휴거’(휴먼시아, 즉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임대주택에서 사는 거지),



등 인권 실현에 힘을 썼으면 하는데, 리버럴 정권의 한계가 많아 어떻게 할는지 알 수 없죠. 한 가지만 확실히 압니다. 이런 "시국 선언" 하시는 분들 밑으로 제 제자들을 보내면 좋은 일 없다는 것만을 확실히 압니다. 그런



더 컸다. 1964년에 개봉된 김기덕 감독의 유명한 영화 을 기억하는가? 이 영화가 그린 것은 저잣거리 폭력배 서두수와 고위 외교관의 딸 요안나 사이의 꿈같고 동화 같은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은 신분과 문화 차이라는 벽을 넘어 극적으로 몸이 되지만, 끝내 현실 속에서





학교는 농민들이 소를 판 돈으로 자식 교육을 시킨 ‘우골탑’(牛骨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자기비하가 아닌 긍정과 자랑으로 들렸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대놓고 돈을 인생의 목표나 최고 가치로 내세울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의식이 있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월세방 신세인 노동자가 각각 체험하는 현실은 천양지차였다. 1980년대 말은 민주화 투쟁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땅값 급등의 시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국제결제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1988년과 1991년 사이만 해도 한국의 실질 부동산 가격은 약 40%나 깡충 뛰었다. 특정 지역에 땅·집을 가진 사람은 1980년대 말부터 자율화된 외국 관광도 즐길 수 있는 상대적

사회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환경 파과 효과는 엄청났지만요. 저는 조 장관이 잘 할는지 어찌 할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리 못한다 해도 그게 생태계의 대대적인 파과와 23조 낭비와는 그 경중이 비교되는 사항인가요?

굳이 '부정'이 없어도,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대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계급/계층의 출신은 그 부모의 광의의 계급적 위치를 충분히, 얼마든지 세습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와 같은 계급의 재생산은, 아무리 천부적으로 '재능'이 있어도 그 사회화 과정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구조적으로

농어촌이나 중하층 출신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난을 부끄럽게 여길 생각도 없었다. 내가 고려대에 온, 거의 첫날에 이 학교는 농민들이 소를 판 돈으로 자식 교육을 시킨 ‘우골탑’(牛骨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자기비하가 아닌 긍정과 자랑으로 들렸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대놓고

새로운 ‘열등 인종’으로서 빈민의 징표가 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빈부 차별이 과거의 반상 차별을 넘어 이미 거의 인종주의적 차별만큼 철저해졌다는 이야기다. 돈을 덜 버는 사람이 인간도 아닌 벌레, ‘이백충’으로 불리고 돈이 전지전능한 신이

만드는 제도만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한국인이 마시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조선시대 사회에서 양반 도련님이 나이 많은 노비한테까지 반말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듯이, 오늘날 한국에서 동류와 경쟁을 벌이면서 윗사람만 보고 사는 것, 경쟁에서 패배했거나 패배할 것 같은 사람을 무시하는 것 등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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